외노자 의사생활/의학잡담

의사의 고민과 인생

박쌤 ParkSam 2025. 2. 23.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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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을 준비하고 있는 아침.

미국에 있는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최근 미국 라이센스를 취득했고

한의원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일한지 몇 달 되지 않았는데

이런 저런 고민이 많은가보다.

 

그에게 환자 한명이 있다.

그것 때문에 고민이 되어 나에게 연락을 했다.

환자는 암으로 자궁적출을 했고

그 이후 림프가 부어 하지부종이 생겼다.

 

환자도 후배도 침 치료를 하고 싶은데

병원측에서는 면역력이 떨어졌으니 침 치료 하지 말라는 식이다.

 

다리에 침을 놓지 못하게 한단다.

 

미국의 정확한 상황은 모르지만

양쪽 모두 이해는 된다.

 

후배는 치료해보고 싶기도 하고

치료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

 

병원은 의료사고에 대한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침 놓고 피만 나도 문제 삼기도 한단다.

 

중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피가 주르륵~ 흘러도

나는, 응~ 괜찮아~~~, 하고 만다.

물론 환자에게 상해가 되는 행위가 발생하면

내가 책임진다.

 

침 맞고 피가 나오는 것은 아주 흔하고

가끔 붓기도 한다.

적절히 조치를 취해주면

약간 멍이 들 뿐이다.

 

지혈을 억제하는 와파린/헤파린을 복용하는 환자에게도 사혈을 했다.

피는 잘 멈춘다.

 

침은 피부에 상처를 낸 것이 아니기에

지혈이 된다.

역시 혈소판이 낮은 사람에게도 침을 놓아야 하면 놓는다.

잘 지혈이 안될 수는 있지만

전혀 지혈이 안되는 것도 아니다.

 

모든 치료에 리스크는 있다.

하지만, 침 치료의 리스크는 매우 낮다.

 

의사의 경험에 따라

리스크를 낮추거나 피할 수 있다.

또는 리스크가 있는 경우

환자에게 미리 고지해준다.

 

가끔 환자의 얼굴에 침을 놓을 때

피가 나거나 멍이 들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우리 몸은 동맥과 정맥이 지나가기도 하지만

모세혈관으로 덮혀있다.

 

대부분 침을 놓아도 혈관이 피해가긴 하지만

수많은 모세혈관을 다 피해서 놓을 수는 없다.

 

동맥이나 정맥에 침으로 찔러도

지혈이 된다.

굵은 주사바늘로 정맥혈을 뽑거나 동맥혈을 뽑아도

지혈된다.

 

겁낼 것은

머뭇거림이다.

머뭇거림은 경험이 없음에서 나온다.

 

아는데 해 본 적이 없어서.

몰라서.

 

간혹 예외의 일이 발생할 수 있으나,

그 모든 것을 의사라고 해도 다 알 수는 없고

대처할 수 밖에 없다.

 

만약 모든 것이 가능한 의사를 찾는다면

수많은 환자들은 갈 곳이 없다.

 

의사와 병원.

모두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경영하는 입장에서는 더 뚜렸하다.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고민이 없이

명예와 비지니스가 먼저인지

아니면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고민을 하는지

 

후배는 이 사이에 끼어서 고민한다.

나는 양쪽을 다 이해하지만

한쪽에 치우쳐 있는 후배는 불편하다.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되고...

자기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런 마음을 이해한다만,

우선 후배에게 한 걸음 물러서라고 했다.

 

지금 그 환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수 많은 환자가 또 올 것이다.

우리는 환자 한명 한명에게 진지하지만

그 모든 환자를 짊어지고 갈 수는 없다.

 

의사와 환자는 지나가는 사이.

병이 낫고 나서

일상생활에서

치료해 준 의사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던가?

 

하지만 의사는

아니 적어도 나는

그 많은 사람을 거의 다 기억한다.

그 사람들이 나의 인생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를 잊어도,

나는 기억하는 짝사랑이다.

 

2011년 1월,

내 환자의 첫 사망.

아주 무거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기억하게 된다.

 

길바닥에서 울며 헤매던 기억.

 

그 이후에도 계속 쌓여간다.

점점 익숙해질까?

조금 덜 무겁지만

그날 밤에는 여전히 방에 앉아서 소리죽여 울던 기억.

 

2월 말부터 3월 초.

또 다른 환자의 기일이 연달아 3명이 있다.

 

수많은 짝사랑을 잃어버린 슬픔.

그래도 진행 중인 짝사랑이 많으니

여기에 집중할 수 밖에 없다.

 

후배에게 한 걸음 물러서라고 했으나

후배는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서 혹시라도 내 말 뜻이 무엇인지 알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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