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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노자 의사생활/경험담

병 때문에 죽겠는데, 치료비 때문에 더 죽겠다

by 외노자 ParkSam 2023.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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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한가한 휴일
늦게 일어났다.
추위에 왔다갔다 하니 몸이 좀 쑤신다.


오늘 아무 일도 없네~ 하면서
한가로이 향수나 만들어보고 청소나 하고 집 정리 좀 해볼까 했는데
띠로롱 메세지가 날라온다.

환자의 어머니 이야기.
심장이 안좋아서 입원했다가 병원에서 처치할 큰 문제가 없어서 퇴원했다.
그러나 심장의 증상은 있다.

마침 동네 약국에 혈압이나 재러 갔다가
거기 있던 의사에게 진맥을 했더니
어마어마한 처방을 받았다.



동충하초, 녹용 상대, 홍화, 산조인, 방풍… 인데 야생약으로.. 라고 쓴거 같다.
하하~


이 처방은 그냥 다 아는 처방.

처방전이 두개이다.

뭐 다 좋은 약이고 먹을만하다.

이렇게 약을 지었는데 인민폐 10000元(180만원)이 넘는단다.
그냥 약재값이다.

넘을 수 밖에.

근데 내가 보기엔 오히려 싸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북경/베이징이 아니기 때문이다.
허베이에 있는 환자이다.

북경이었으면 2배 이상 비쌌을 것이다.

첫번째 처방 약 5개만  
중국의 원격처방 회사에 넣어보니
1일치에 8000元이 나온다.

두번째 처방은 별로 안비쌈.

환자는 심박이 느리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잘 놀라고
흉통과 등에도 통증이 있다.

뭐 먹어도 상관없는데
굳이 이렇게 먹을 필요가 있는가?

그 의사는 환자에게 몸이 너무 허약하다
비싼 약재로 몸을 보해야 한다고 했단다.

문제는 약값을 감당할 수 있느냐 문제이다.
뭐 감당할 수도 있겠지.
먹고 아주 좋아질 수도 있다.

나는 아직 환자를 보기 전이기 때문에.
환자가 말한 증상만으로 판단할 수 밖에 없다.

만약 병원으로 올 수 있으면 오고
오지 못하면 가족이 와서 처방을 받고 약을 보내면 된다.
그것도 여의치 못하면 처방전을 보내주고
현지에서 약을 지어서 먹으면 된다.
다만 북경 이외의 지역의 약재를 믿지 못하는 것이 좀 있다.

내가 못 믿는 것이 아니라
환자들이 믿지 못한다.

이미 여러 곳의 병원을 다닌 경험이 있는 환자들은
3급 병원의 약도 믿지 않는다.
3급 병원의 약재가 별로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방으로 가면 그것이라도 믿어야 한다.

약재는 품질이 중요하다.
어느 정도 약효가 나와야 하는데
약재가 너무 좋지 않으면 약효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타지역에 있는 환자가
일부러 북경에서 약을 지어서 가져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북경에서도 의료보험이 되면
3급 병원의 약이 훨씬 싸고 보험혜택도 높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좋지만,
일부러 홍의당에서 약을 가져가는 사람들이 있다.
또는 경제적인 것을 따져서 더 싼 곳으로 가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약효의 문제이다.

믿을 수 있는가.
이 문제는 이 세상 곳곳에 퍼져있는 문제이다.

환자는 비싼 약값 때문에 나를 찾게 되었고
내가 다시 처방해주겠다고 했다.
비싼 약재 한두개 섞으면 비싸진다.

약재 한개 값이 다른 약재보다 비싼 경우는 많다.

약방에서 약으로 쓰는 동충하초 1그램에 3~500元이다.
그것도 품질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비싼 약이면 다 좋은가?
자물쇠를 여는데 금으로 된 열쇠가 좋은가? 맞는 열쇠가 좋은가?

약재는 왜 비싼가?
희귀성이 있고
어떤 약재는 희귀성에 특효가 있는 것도 있다.

그러나 동충하초는 특효는 아니다.
다른 약으로 대체가능하다.

녹용 역시 다른 약으로 대체가 가능하나
그 특성이 있어서 사용하긴 한다.

공진단에 있는 사향 대신
목향도 넣고 침향도 넣고
사향을 대체하지만,
사향이 필요한 경우는 사향을 쓰겠지만
굳이 일반 사람들에게 사향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니 목향이나 침향으로 대체가 된다.
각각의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굳이 그 특성이 필요없다면 대체하면 된다.

사향이 좋아, 라고 고집할 수도 있지만
내가 환자라면
그 비싼 사향을 고집할 수가 없다.

좋은 약을 많이 먹으면 좋은가?
그것도 아니다.

사람의 몸은 한계가 있다.
약을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가 있다.
내 몸이 받아들 일 수 있는 것이 100 이라고 가정하자.
지금의 내 몸의 기운이 50이다.
그렇다면 50을 보해주면 될까?
50을 정확히 보할 수 있을까?

100이 넘어가면 어떻게 될까?
몸이 버티기 힘들어진다.
안그래도 50밖에 안되는데
갑자기 50이 채워져서 100이 된다면 그것도 버티기 힘들다.
그러나 약이란 것은
한번 먹는 것이 아니라 매일 먹는다.
오늘 50 더하고
내일 50 더하면
150이 된다.
몸이 버틸까?
몸이 터져버릴 지경이다.

그렇기 때문에 몸을 보하는 것은
50에서 5를 더하고
다시 5를 더하고
다시 5를 더하고..
이런 식으로 조금씩 보해야 한다.

충전 건전지가 왜 충전이 완료되면 자동으로 꺼지는가?
더 충전하면 안되는가?
용량이란 것이 있다.
100이 되면 충전을 멈추어야 한다.
더 충전하면 불이 난다.

충전지가 오래되면, 즉 병이 나면
100%에서 80% 70% 정도 밖에 충전이 안된다.
새로 충전지를 바꾸면 100%가 되겠지만
몸은 그럴 수가 없다.
80% 충전할 수 있는 정도로 만족해야 한다.
완충 80%인 지금 상태에서 100%이다.
다만 몸은 기계가 아니니
조금의 개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노화는 계속 진행된다.
건전지도 그렇듯이.

내 노트북이 2012년 모델이다.
이미 11년째 쓰고 있다.
전원을 빼면 10분만에 1%가 된다.
노트북 배터리를 주문했다.
스스로 고쳐봐야지.

인간의 몸도 이럴 수 있을까?
기계는 배터리를 바꾸면 되지만,
인간의 몸은 어디를 바꿔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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