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침에 치료 받았던
남자아이 10살
넘어지면서 머리 안다치려고 머리를 들었는데
목의 근육을 다쳤다.
진료 받으러 와서는 고개를 삐딱하게 하고
좌우로 돌리지도 못하고
침 안맞겠다고 울고불고 난리쳐서
나는 어머니 내보내고
나랑 둘이 남았다.
울고 불고
난 아이를 달래거나 뭐 해줄께 안아파. 이런 말 안한다.
오히려 침 맞는거 이정도 아프다, 라고 한다.
아이들은 믿다가도 믿지 않는다.
늘 어른들에게 속아왔기 때문이다.
그정도 아프다고 해서 했는데, 더 아팠기 때문이다.
난 거짓말 안했지만
거짓말 쟁이는 늘 어른이다.
아이에게 침을 속이고 놓거나 하지 않는다.
이미 어른들에게 많이 속아서 안다.
난 오히려 이런 침을 맞을 것이다, 라고 보여주고 만져보게도 한다.
손에 감추고 놓는다고?
정말 완전히 모르게 할 수 있다면 모르지만
뽀록날거라면 쌩쑈를 해도 안된다.
아이는 이미 병원에 들어온 이상,
자신의 보호막을 가동중이다.
가장 믿는 보호막이 부모이지만
부모가 나를 아프게 할 것이라 생각하진 않지만
부모조차 믿지 않는다.
침 몇개 놓기 위해
20분간 울고 있는 남자녀석과 대치 중.
나의 대치는 논리적이다.
침 3개만 놓자. 1초면 돼. 넣었다 뺀다. (사실이다)
어떤 침이요!
침을 보여주고
그거 두꺼운거 아니에요?
아니야~ 이게 얇은거야. 원하면 더 얇은 침으로 놔줄께.
결국 더 얇은 얼굴 미용 침을 꺼내보여줬다.
3개. (3개는 3곳을 치료해야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1개! (1개로 3번 놓을 거다, 쿡쿡쿡)
알았어요..
3개에서 1개로 줄어들었다. 아이가 허락했다.
하지만 곧 다시 싫다고 울고 있다.
난 아이의 눈물에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
감정이 없어서가 아니다.
아이에겐 당장 치료해서 학교를 보내야
엄마도 마음 놓고, 어쩔 수 없이 병원 따라온 동생도 학교에 갈 수 있다.
그런 배경은 둘째 치고
목을 삐딱하게 하고 움직이지도 만지지도 못하는 아이를
그냥 보낼 수는 없다.
내가 못하는 치료가 아니기 때문에
치료해야 한다.
아주 간단하다.
쿡쿡쿡~ 하면 끝난다.
10초도 안걸린다.
길게 잡으면 5초.
근데 그 5초를 위해 1200초(20분)를 대치 중이다.
아이가 나에게 힘을 쓰려고 하고 내 손을 잡고 밀어내려고 한다.
니가 되겠니? 한 3~4년은 더 커야 나에게 되지.
결국 나의 무력(?)에
눕지도 않고 그냥 앉은 채로
목에 쿡쿡쿡~ 3번 침을 맞았다.
제대로 침 맞으면 대부분 바로 효과가 나서 돌아온다.
근데 침도 너무 얇고 짧다.
내 목표는 바로 나아지는 거였는데.. 쩝..
아마도 내일 아침이면 나아지겠지만... 아쉽..
더 놓으려고 하니
아이는 2번이나 맞았잖아요! 라고 하기에
아니야! 3번 놨어!!! 라는 나의 말에
더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3번 놨는데 1번을 전혀 못 느꼈다. 젠장!
아이들은 대부분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오냐 오냐 최고 최고 하고 자라서
외부에 대한 두려움은 있지만
자기 세상에서는 최고이다.
근데 이상한 의사 선생이 자기 영역을 모두 없애버렸다.
엄마가 밖에 나갔다. ㅠ,ㅠ
치료가 끝나고 나가면서
나에게 맺힌 미움을 모두 쏟아냈다.
"나 두번 다시 여기 안와"
큭, 그래라. 근데 너는 나아야 된다.
어머니는 고생하셨다고 하는데
난, 지금 아이는 미움이 가득찬 상태일 것, 이라고 이야기했다.
점심 때 다른 의사와 이야기하는데
내 얼굴이 어른 10명 본 듯 피곤해보인다고 한다.
그렇게 피곤하다고 느끼진 않았는데
얼굴에 티가 낫나보다.
다음 날 아침.
다음날 아침 거의 다 나았단다.
목을 똑바로 세울수 있게 되었나보다.
아이를 낫게 해줄거라고 믿고 오는데
그리고 나는 아이를 낫게 할 수 있는데
아이랑 실랑이 때문에 그 치료를 안 할 수 없다.
악역 한번 하면 된다.
다음에 아파도 안오려고 하겠지만, 엄마가 끌고 오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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